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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

[환경산행] 관악산에서 내려다 본 삼막천과 안양의 풍경 - 나리던 눈처럼 산과 함께 마음도 맑아져습니다

관악산에서 내려다 본 풍경


일요일 아침 10시, 일행을 만나기로 한 관악역 2번 출구 계단 아래는 산에 오르려는 등산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쌀쌀한 공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등산객들은 서로 인사를 나누며 추위를 녹이고 있었습니다. 일행을 못 찾아 헤매는 친구들에게 손을 높이 들어 소리치기도 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 끓였을 보온병의 커피를 나눠마시며 왁자지껄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습니다.

환경산행을 처음 참가해 보는 지라 일행의 얼굴을 모르는 저는 한참을 여기저기 기웃거립니다. 환경산행하는 사람들의 얼굴은 뭔가 특별한 점이 있어 금방 알아볼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연락처를 핸드폰에 저장해 둔다는 것이 또 깜박했습니다.

하지만 노력이 헛되지 않았는지 아니면 하느님이 보우하사인지 환경산행 일행을 딱 한 번에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뭐 사람 좋아보이는 얼굴도 있었겠지만 쓰레기 줍는 집게를 저렇게 많이 챙기고 다니는 데 어찌 못 알아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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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입구에서부터 집게가 바쁘게 움직여야 했습니다. 산에서 다 내려와 놓고 가지고 온 쓰레기를 버리고 가다니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쓰레기를 찾느라 여기저기 두리번 거렸고 시선은 산길을 훓으며 올라갔습니다.

대장님의 쓰레기 봉투는 벌써 가득찼습니다. 대장님이 봉투를 묶는 동안 잠시 여유를 부리니 벌써 꽤 올라와 있습니다. 땅만 보고 걷느라 미처 몰랐던 겨울산의 고즈넉한 냄새가 코끝을 간지렵히고 누가 쳤는지 도화지 같은 하늘에 날카롭고 절도있게 그러면서도 부드러운 묵향을 머금은 나무가지들이 뻗었습니다.



오르다 보니 내려오는 사람, 올라가는 사람. 휴일에 산을 찾는 사람들로 좁은 산길을 따라 개미 꼬리 물고 가듯 행령이 이어집니다.

얼핏 산길은 깨긋하게만 보입니다. 하지만 쓰레기를 줍는 사람들 눈에는 쓰레기가 보입니다. 길 옆으로 조금만 고개를 돌리면 쓰레기는 쉽게 눈에 띕니다. 특히 의자가 있어 사람들이 쉬었다 갈 수 있는 곳, 풍경이 아름다워 사람들의 발길을 세우는 곳이면 어김없이 담배꽁초와 막걸리병, 사탕봉지, 과일껍질 등 쓰레기가 무말랭이 널어놓은 것 마냥 나뒹굽니다.

만나는 등산객마다 "좋은 일 하십니다", "수고 많으십니다" 라고 인사를 건네고 "어머 이렇게나 쓰레기가 많아요?" 하며 깜짝 놀리기도 합니다.

인간이 발자욱으로 다져온 얕으막한 벙커 양쪽으로 키작은 나무들이 은패하듯 뿌리를 내리고 있어 주변은 적막해지고 다지듯 내딪는 내 발자국 소리와 폐 속에서부터 시원하게 쓸어 올리는 내 숨소리만이 나를 감싸옵니다.

산을 오르면 어김없이 맞이하게 되는 이런 순간이면 나는 산과 얘기를 나누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산은 언제나 그렇듯 내 무거웠던 마음의 짐들을 덜어냅니다. 산 속에는 저마다의 시크릿 가든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곳을 지나쳐 벙커를 빠져나오면 농밀했던 공기가 갑자기 옅어지면서 장대한 풍경을 펼쳐보입니다. 

 호랑이 등허리같은 산등성이가 덩실덩실 뻗어가고 산을 옮겨 놓고 바위가 돼버렸다는 고대 전설 속의 거인의 형상을 한 기암들이 금방이라도 살아 움직일 듯 위풍당당합니다. 마침 눈송이가 나리고 세상은 하얗게 뭍혀갑니다.

 


눈이 내리기 시작하자 청소를 멈추고 내려가기로 했습니다. 경인교대 앞 쪽으로 내리는 길은 험한 편은 아니었지만 눈이 얼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등에 짊어 진 쓰레기의 무게가 기울 때마다 허리와 무릅을 따라 발목과 발까락에 이르기까지 긴장시켰습니다. 하지만 진정 나를 위태롭게 하는 것은 눈 덮인 산의 아름다움이었습니다. 굽이 굽이 펼쳐지는 비경들에 눈이 팔려 발을 헛딛곤 했습니다. 이 아름답고 소중한 것들을 왜 잊고 살았던 것일까! 그제서야 내가 오늘 청소한 것이 산이 아니라 내 마음이었음을, 나리는 눈처럼 산과 함께 마음이 하얗게 맑아져 옴을 깨달았습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습니다. 하산하고 나서의 허기를 달래는데 두툼한 녹두전만한 게 있을까 싶을 정도로 고소하고 담백한 맛이 일품이었습니다. 식탁은 또 산 얘기로 빠져듭니다. 다음 산행은 어디로 가게 될 까요?